보홀에서 시키호르로 가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조식으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시키호르로 향하는 10시 페리를 타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8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9시쯤 타그빌라란 항구에 도착했다. 리조트에서 택시를 불러주니 편했다.
헤난 리조트에서는 디포짓을 현금이나 카드로 받는다. 나는 국제 체크카드를 썼는데, 환불받는 데 한 달 넘게 걸릴 수도 있다고 해서, 다음엔 현금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내 체크카드에서는 돈이 아예 빠져나가지 않아서 나중에 살짝 당황했었다. 또, 환전할 때는 100달러가 아니면 환율이 나쁘고, 조금이라도 구겨지면 아예 안 바꿔주려고 하니, 그런 지폐들은 디포짓 용도로 써두면 괜찮을 것 같다.
12GO라는 사이트에서 보홀 탁빌라란 → 시키호르 구간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보통은 오후에 출발해서 저녁쯤 도착하는 배가 많지만, 이번 여행은 시키호르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어서 아침 배를 골랐다.
배는 정말 느리게 달렸다. 바다를 가르며 한참 지나 발리카삭 섬을 멀리 스치고, 2시간 반쯤 지나 시키호르에 닿았다.
시키호르엔 항구가 두 군데 있는데, 우리가 내린 곳은 투보드 해변 쪽보다는 살짝 먼 쪽이었다.
미리 예약해 둔 리조트에 픽업 요청을 해뒀더니 기사님이 나와 계셨다. 덕분에 아주 편하게 이동했지만, 뭔가 너무 수월해서 여행이 아니라 출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한테는 좀 과하게 편안했던 이동이었다.
이번에 묵은 인피니트샌드 리조트는 깔끔하고 만족스러웠다.
직원들도 친절했고, 무엇보다 리조트 레스토랑이 해변과 딱 붙어 있어서, 바다 보면서 맥주 한 잔, 칵테일 한 잔 하기 정말 좋았다.
진짜... 앉아만 있어도 힐링이었다.
짐을 풀고 시간이 좀 남길래, 리조트에서 오토바이를 빌렸다. 하루에 만 원 정도였고, 기름은 직접 넣는 시스템.
두 대를 빌렸는데 한 대는 기름이 가득, 다른 한 대는 거의 비어 있었다. 이건 뭐, 운이지 뭐.
가까운 주유소에서 기름 채우고, 오랜만에 오토바이 운전을 조심조심 시작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루그나손 폭포(Lugnason Falls).
길도 조용하고, 폭포도 사람 많지 않아 좋았다. 입장료 내고 들어가니 아담한 폭포가 숨어 있듯 자리 잡고 있었다.
더위를 식히려고 발 담그고 앉아 있는데, 누군가 폭포 위로 올라가 다이빙을 했다.
하나 둘 따라 하는 사람들. 나도 해보고 싶었지만... 고소공포증 때문에 결국은 못 뛰었다.
그냥 밑에서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만 봤다. 괜히 속에서 “나도 10년 전엔 할 수 있었는데…” 하는 묘한 기분.
숙소로 돌아와 씻고, 해가 지기 전에 리조트 레스토랑으로 갔다. 마침 해피아워.
여긴 칵테일이 1+1은 아니고, 절반 가격으로 할인해 준다.
그래서 메뉴 맨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차례차례 시켜보기로 했다. (신혼여행 커플을 위해~)
나는 평소처럼 산미겔 필센을 1+1으로 주문했다.
술과 음식에 배가 부를 즈음, 해변 쪽을 바라보니 해가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아, 여기가 선셋 포인트였구나. 생각지도 못한 선물 같았다.
마지막 잔을 들고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며,
‘이번 시키호르 여행은 이곳 레스토랑에서 이렇게 매일 저녁을 보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