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상주면에 자리한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서 유일한 산악형 공원이다.
산 전체를 감싸고 있는 기암괴석들이 마치 오랜 세월 동안 바람과 비를 견디며 깎여진 거대한 조각품처럼,
산의 품격을 신비롭게 만들어준다.
1974년, 경상남도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된 금산은
2008년, 명승 제39호로 승격되며 그 역사적·자연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높이 681m의 이 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이며, 걷는 걸음마다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비단으로 감싸지 못한 약속, ‘금산’이라는 이름의 유래
금산은 본래 ‘보광산’으로 불렸다.
신라 시대, 원효대사가 이곳에 보광사라는 절을 세운 데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고려 말, 역사의 전환점이 이곳에서 탄생한다.
이성계가 이곳에서 100일 기도 끝에 조선을 개국했고, 태조가 되었다.
그는 새 나라가 열리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겠다는 서원을 했지만,
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싸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 뜻을 담아, 산의 이름에 ‘비단 금(錦)’ 자를 넣어 금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이름은 17세기 중후반부터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금산으로 향하는 길, 복곡 주차장과 셔틀버스
금산을 오르기 위한 시작점은 복곡 제1주차장이다.
산 중턱까지 차량이 올라가는 제2주차장이 보리암과 가까워 편리하지만,
대부분 이른 아침부터 만차가 되기 때문에 도착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주차를 마치면, 제1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25인승)를 타고 제2주차장까지 올라간다.
셔틀은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인원이 가득 차면 즉시 출발한다.
마지막 셔틀은 오후 5시, 반드시 하산용 표를 미리 챙겨야 한다.
흙길을 따라 오르는 길, 금산의 첫인상
제2주차장에서부터는 흙길이 시작된다.
약 10분 정도 완만하게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주변은 점점 더 자연의 고요함과 기암괴석의 웅장함으로 채워진다.
머리를 들면 사방에 펼쳐지는 거대한 바위들이 압도적으로 다가오며,
이곳이 단순한 산행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준다.
잠시 후, 작은 공터처럼 보이는 지점에 도착하면
보리암과 금산 정상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금산 정상은 오른쪽, 보리암은 왼쪽 방향이다.
계단 하나만 넘으면, 금산 정상
금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돌계단으로 시작된다.
짧지만 가파른 그 계단을 올라서면, 이내 정상석이 보인다.
정상 인근에는 조선 중기, 유학자 주세붕이 금산에 올라 백운동서원의 기초를 다졌다는 이야기를
새긴 바위, 문장암이 있다.
그 문장암을 지나 계단을 더 오르면, 망대라 불리는 옛 봉수대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남해를 넘어 한려해상국립공원 전체의 윤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깊고 넓은 바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
그리고 산 아래로 이어지는 마을의 풍경까지.
한 자리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이곳에 오를 이유가 된다.
아찔한 절벽 위의 쉼터, 금산 산장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금산 산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 산장은 아주 오래전부터 절벽 위에 자리한 작은 쉼터로,
등산객들에게 간단한 음식과 따뜻한 숨을 팔아오던 곳이다.
멀리서 보면 절벽 위에 초록 지붕 하나가 간신히 걸려 있는 듯 아찔하지만,
그 안에 들어서면 오히려 세상과 적당히 단절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라면 한 그릇, 음료 한 잔과 함께 이곳에서 찍는 인증 사진은
많은 이들에게 이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다시 발길을 돌려, 보리암으로
갈림길까지 내려와 보리암으로 향한다.
이곳은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기도처로 꼽히는 장소다.
보리암은 절벽 위에 지어진 사찰이다.
어떻게 이런 곳에 절을 지을 생각을 했는지, 처음 본 사람들은 대부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절 안에는 해수관음보살상이 바다를 향해 서 있다.
자비로운 그 미소는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믿음과 함께
오랜 시간 사람들의 기도와 염원을 받아왔다.
기도, 마음의 중심에서 퍼지다
보리란 깨달음을 뜻한다.
이 보리암에서는 깨달음을 향한 기도와 수행이 끊이지 않는다.
관세음보살은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의 신앙과 함께해 온 존재다.
그 이름을 외고, 마음에 새기며, 간절히 기도하면
삶의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른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이들이 유난히 많다.
그 기도는 바람을 타고 바다로 흘러나가고,
바다는 다시 그 소망을 담아 먼 곳까지 퍼뜨린다.
이성계가 이곳에서 100일을 기도했던 것도,
이곳이 단순한 산이 아니라 삶의 결심과 전환을 만들어내는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금산은 지금도, 소망을 품고 있다
산을 오르는 내내
금산은 말을 아끼고, 고요하게 사람들의 염원을 받아준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풍경을 보기 위해, 혹은 고요함 속에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오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 내려가는 길에서는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과 생각을 지니고 돌아간다.
산이 품은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 위를 걷는 우리.
금산은 오늘도 조용히, 누군가의 간절함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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