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을수록 내 몸도 깊이 움츠러든다. 가까운 언덕이라도 오를 정도로 숲을 좋아하지만, 추위 앞에서는 언제나 작아지곤 했다. 유독 길었던 이번 겨울, 문득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든 건 아마도 차갑게 움츠러든 내 몸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인생의 남은 날들 중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지만,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온다. 몇 차례나 앓았던 독감이 몸의 존재감을 뚜렷이 새겨놓은 탓이다. '마음이 일면 몸도 따른다'보다는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다'라는 말이 내겐 훨씬 더 와닿는다.
그렇게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던 어느 토요일, 모처럼 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졌다. 집을 박차고 나와 진주시 명석면에 있는 광제산으로 향했다. 사실 광제산은 입구의 '황토맛집'이라는 식당 덕분에 여러 번 찾아왔던 곳이라 낯설지 않았다. 유혹적으로 다가오는 맛집을 지나쳐 산길로 들어서는 일은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했다.
광제산, 가파른 길 너머의 풍경
주변 어른들은 광제산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고 귀띔해 줬다. 초입에서부터 오르막길이 이어졌지만, 처음 5분의 1 정도 구간까지는 완만하여 속도를 내며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곧 끝없이 펼쳐지는 가파른 경사지가 나타났고, 조금 전의 자신만만했던 마음은 점차 숨이 차오르면서 사라졌다. 따뜻한 햇살에 땀은 금세 흐르기 시작했지만, 중간에 쉬었다가는 감기라도 걸릴 것 같아 쉬지 않고 능선을 향해 올랐다.
광제산은 진주시 명석면에 위치한 해발 420m의 산이다. 높이가 그리 높진 않지만, 정상에 오르면 남해바다와 덕유산 자락까지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정상에 있는 봉수대는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역사적 유적으로, 옛날엔 횃불과 연기로 긴급 상황을 알리던 통신 시설이었다고 한다.
능선에 도착하니 정상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발밑에 염소똥 같은 것이 자꾸만 눈에 띄었다. 산 중턱까지 염소가 다니는 건지 신기했다. 마지막 봉수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자, 그곳에서는 뜻밖의 장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상에서 맞이한 360도의 자유
광제산 정상 봉수대에 오르는 순간, 막혔던 시야가 갑자기 열리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산맥, 그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남해 바다와 저 멀리 덕유산 자락까지 이어진 풍경은 해발 420m의 낮은 산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차갑게 식어가는 몸도 잊고, 멍하니 자연을 바라보며 모든 근심을 잠시 내려놓았다.
광제산을 더욱 특별하게 즐기는 법
광제산 산행은 나처럼 주로 홍지마을 주차장에서 시작하는데, 광제서원을 지나 정상의 봉수대까지 약 4.5km 정도의 왕복 코스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천천히 오른다면 좋은 길이고, 특히 토종 소나무 숲이 가득해 산림욕을 하며 오르기에도 아주 좋다.
산행 후엔 근처 '황토맛집'에서 맛있는 식사로 마무리하는 것도 추천한다. 광제산 입구에 위치한 이 식당은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어 산행 후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이다.
마치며
광제산은 비록 해발 420m의 낮은 산이지만,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운 전망이 공존해 있어 누구나 쉽게 산행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봄날의 햇살이 점점 따뜻해지는 요즘,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채우고 싶다면 광제산에 한번 올라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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