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기록처럼

끝까지 가지 못했지만, 충분히 멀리 왔다 (5편)

편인文山 2025. 5. 2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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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겁먹은 자의 도망과 수행승 오해 - “끝까지 가지 못했지만, 충분히 멀리 왔다”

 

함께 짠덜딸 호수에 다녀온 네덜란드 친구가

함께 여행하자는 제안을 해주었다.

목적지는 인도 정부 허가를 받아야만 지날 수 있는 장소로,

버스가 있으면 타고, 없으면 걸어서, 몇 백 킬로미터의 히말라야를 따라가자고 한다.

나는 망설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겁을 먹었다.

 

 

“반군, 허가증, 그리고 머릿속의 망상”

그 목적지는 반군이 출몰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인도 정부의 허가증까지 받아야 했다.
친구는 준비가 다 되었다고 했고, 나도 서류까지 준비완료했다.

그런데…
‘정말 이 친구를 끝까지 믿을 수 있을까?’
‘만약 반군이 나타난다면, 난 도망칠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겁먹었다.

결국, 혼자 길을 돌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머리를 밀었다, 도망이 아니라고 믿기 위해”

겉으로는 당당한 척했다.
히말라야에서 내려가는 버스를 타기 전,
가지고 다니던 바리깡으로 나는 삭발을 했다.

머리를 민 이유?
잘 모르겠다.
다만, 뭔가 이건 도망이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수행승으로 오해받은 한 명의 여행자”

펀잡 평야로 향하는 버스 안.
긴 시간이었고, 버스는 중간에 몇 번씩 기도를 위해 멈췄다.

한 휴게소에서는, 절에서 단체로 여행 온 한국분들이 나를 보며
합장을 했다.

삭발한 머리, 까맣게 탄 피부, 말이 없었던 나.

그분들 눈에 나는,
수행 중인 스님으로 보였던 거다.

 

 

“인도 위의 자전거”

암릿사르에서 가장 저렴한 자전거를 샀다.
기어도 없는 중고 자전거.
그리고 무작정 타르사막 옆을 달렸다.

첫째 날 50km,
둘째 날 80km,
셋째 날 60km.

사막의 땡볕 아래서, 지쳐 쓰러질 듯한 몸을 이끌고
나는 달릴 수밖에 없었다. 숙소가 없어서....

 

“딸 많은 집에서 청혼을 받다”

갈증에 쓰러질 듯 노크한 한적한 도로 위 시골집.
물 한 모금 얻으려 들어간 집.

물도 주고, 차도 준 그 집주인아저씨는
나보고 자신의 딸들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너무 진지한 분위기에 웃자고 넘기듯 도망쳤지만,
문득 생각난다.
"그중 누구라도 골랐다면, 지금쯤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내가 지쳐 있다면, 그 어떤 풍경도 의미 없어진다”

 

Bathinda에 도착하자마자 자전거는 만 원에 팔았다.

그동안 길 위의 풍경들은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지쳐버린 나는 그것들을 모두 스쳐 보냈다.

그때 깨달았다.
아무리 좋은 장소라도, 내가 지쳐 있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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