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기록처럼 10

끝까지 가지 못했지만, 충분히 멀리 왔다 (5편)

5편. 겁먹은 자의 도망과 수행승 오해 - “끝까지 가지 못했지만, 충분히 멀리 왔다” 함께 짠덜딸 호수에 다녀온 네덜란드 친구가함께 여행하자는 제안을 해주었다.목적지는 인도 정부 허가를 받아야만 지날 수 있는 장소로,버스가 있으면 타고, 없으면 걸어서, 몇 백 킬로미터의 히말라야를 따라가자고 한다.나는 망설였다.아니,정확히 말하면, 겁을 먹었다. “반군, 허가증, 그리고 머릿속의 망상”그 목적지는 반군이 출몰하는 곳이었다.그래서 인도 정부의 허가증까지 받아야 했다.친구는 준비가 다 되었다고 했고, 나도 서류까지 준비완료했다.그런데…‘정말 이 친구를 끝까지 믿을 수 있을까?’‘만약 반군이 나타난다면, 난 도망칠 수 있을까?’그 질문 앞에서,나는 겁먹었다.결국, 혼자 길을 돌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머리..

삶을 기록처럼 2025.05.23

나조차, 나를 모른다 (4편)

4편. 절벽 아래로 떨어진 버스 그리고 나 - “나조차, 나를 모른다” 어디든 좋았다.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이면 더 좋았다.그렇게 나는 아무 목적지도 없이, 히말라야를 향한 첫 버스를 타려 했다.하지만 늦잠을 잤다.그날, 그 늦잠이 나를 살렸다.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 버스”Losar라는 마을로 향하는 새벽 첫 버스를 놓치고,나는 다음 버스를 탔다.버스는 끝없는 꼬불꼬불 비포장 오르막을 달렸다.길은 좁았고, 옆에는 천 길 낭떠러지가 버스를 한없이 따라왔다.한참을 달리다 갑자기 멈춰 선 차량들.30분 동안 멈춰있기에 운전사에게 물었다. “앞서 출발했던 버스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그게,내가 놓친 첫 번째 버스였다. “두려움보다 더 큰 감정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깨달음”그 순간, 묘한 정적이 흘렀다.무..

삶을 기록처럼 2025.05.22

도망치지 않고 부딪혔더니, 인도였다 (3편)

3편. Oh, my India - “도망치지 않고 부딪혔더니, 인도였다”드디어 인도에 도착했다.눈앞에 펼쳐진 건 혼돈, 낯섦, 그리고… 소똥.도망치려던 내가 처음으로 멈춘 땅.쉽게 도망칠 수도 없는 나라, 인도였다. “공항 바닥에 소똥이 있었다”밤늦게 도착한 뉴델리 공항.바닥에 누워 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공항 한편엔 소똥이 널려 있었다.국제공항인데....거리를 나서자 차도 옆으로 코끼리가 지나가고,도로는 무질서 그 자체였다.나는 처음으로, 진짜 낯선 나라에 도착했다는 걸 실감했다. “오래 버티기 위해, 불편을 선택했다”첫날 숙소는 에어컨 없는 방.덥고 피곤했지만, 돈을 아끼려면 그게 최선이었다.더위에 잠은 잘 수 없었다.몸은 지쳤고, 땀은 말라붙었다.그런데 이상하게, 그 불편함이 여행 같았다. “그..

삶을 기록처럼 2025.05.21

나를 단련하기 위해, 나는 더 낯선 곳으로 갔다 (2편)

2편. 도망치듯, 그러나 계속 걷는다 - “나를 단련하기 위해, 나는 더 낯선 곳으로 갔다”보라카이에서 혼자가 되었다.온통 커플뿐인 해변에서 나는 마치 혼자 남겨진 쌀자루 같았다.그렇게, 나는 다음 목적지를 찾았다.도피성 여행이 시작되었다. “혼자만의 여행은 낭만보다 현실”보라카이에서 일로일로로, 다시 마닐라로, 또 세부로.목적이 없었던 여행은, 목적 없는 하루들로 변해갔다.나는 내 삶의 리듬을 찾기보단, 그저 ‘새로운 장소’로 옮기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었다.심지어 일로일로에서는 내가 한국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다.사진을 찍고, 노트북을 열고, 보고서를 쓰듯, 여행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사진들을 나는 왜 찍었을까?"그렇게, 나는 내 여행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세부에서의 잠깐의 안식” ..

삶을 기록처럼 2025.05.20

내가 나를 꺼내러 간 여행, 그 시작의 조각 (1편)

1편. 여행을 시작하기 전과 그 이후 - “내가 나를 꺼내러 간 여행, 그 시작의 조각” 스무 살의 나는 한참을 무너져 있었다.무언가를 끌어안기보다는, 내려놓고 싶었던 시기였다.그래서 떠났다. 어디라도 좋았다.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 - 내 삶은 두 갈래로 나뉜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과 그 이후로 - “그냥 해보고 싶어서 했다”2005년의 인천공항.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미쳤다”는 말이었다.하지만 나는 그 말이 좋았다.정답이 없다는 말 같아서, 틀려도 된다는 말 같아서.항공권은 직항이 아닌 홍콩 경유였다.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타고, 처음으로 외국 땅을 밟았다.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낯선 풍경들이 마치 나를 바라보는 시선 같았다.어색하고, 두렵고, 그래서 더 설레는. “모든..

삶을 기록처럼 2025.05.19

듣는다는 것과 본다는 것의 철학

우리는 흔히 '귀가 밝다', '눈이 밝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단순히 소리를 잘 듣거나, 사물을 잘 본다는 뜻이 아니다. 이러한 표현 속에는 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 누군가의 귀가 밝다고 말할 때, 이는 그가 특정한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듣는다는 의미이며, 눈이 밝다고 말할 때도 특정한 형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 '듣는 것'과 '보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강신주 선생님의 '장자수업'을 읽고** 듣는다는 것: 타인의 소리가 아닌 나의 소리를 듣기보통 듣는다는 것은 귀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행위를 의미한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적 수용을 넘어선다. 우리는 외..

삶을 기록처럼 2025.03.14

장자의 변무(辯無) – ‘없음’을 변론하다

삶을 즐기려면 철학적 사유가 필요합니다.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는 삶을 놀이터로 만들어 줍니다. - 나의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분법’ 속에서 사고합니다. 있는 것(有)과 없는 것(無), 옳고 그름, 참과 거짓 같은 개념들은 마치 당연한 진리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장자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를 깨고, **‘무(無)’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논증하는 과정을 **‘변무(辯無)’**라 불렀습니다.장자의 변무는 단순히 **‘없는 것에 대한 변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없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개념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철학적 시도였습니다.1. 장자는 왜 ‘무’를 변론했을까?장자가 활동했던 시..

삶을 기록처럼 2025.03.09

백수는 철학과 친해집니다.

사주를 통해 나에게 어울리는 철학자 찾기사주팔자를 기반으로 한 명리학은 우리의 성향과 강점, 약점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도구입니다. 이를 통해 자신에게 어울리는 철학적 방향성을 찾는 것도 가능합니다.명리학은 단순히 운명을 점치는 것을 넘어, 개인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고 삶의 가치를 탐구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사주를 분석하면 나의 기질과 조화를 이루는 철학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은 장자와 같은 동양 철학자를,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사람은 칸트나 데카르트를 더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명리학으로 철학적 개념을 잡아가는 과정사주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을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철학적 개념을 잡아가는 데에도 실질적인 길잡이가 됩니다..

삶을 기록처럼 2024.12.30

백수의 여행 에세이 시작하기

20년 전 인도 여행, 그리고 시간의 흔적컴퓨터 폴더 속 깊이 잠들어 있던 오래된 사진들을 열어보았습니다. 해상도는 터무니없이 낮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당시의 기억이 더욱 생생히 떠올랐습니다. 20년이 훌쩍 지나 다시 꺼내 본 인도 여행의 조각들 속에서,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마음속 깊은 곳을 흔들었습니다. 나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여행의 의미여행은 같은 장소를 방문하더라도, 나이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과 의미를 줍니다.20대의 여행은 한없이 자유롭고, 세상에 대한 설렘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탐험의 시기입니다.30대의 여행은 조금 더 깊이 있는 탐구와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가 됩니다.40대 이후의 여행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과거를 품고 현재를 재발견하는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옵니다. 사진..

삶을 기록처럼 2024.12.26

여행의 기억을 새로운 방식으로 기록하다

소중한 추억의 무덤여행이 끝난 후, 우리는 촬영한 사진을 안전하게 백업하며 소중한 추억을 보존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끝나면, 사진은 폴더 깊은 곳에 묻혀 오랜 시간 잊히곤 합니다. 결국 우리의 여행 기억은 단순한 디지털 파일로만 남아버리는 경우가 많죠. 여유로운 시간, 새로운 시도백수 생활은 마음속 시간에 대한 여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과거 일을 하던 시절에도 충분히 시간을 낼 수 있었지만, 사진을 정리하고 그 의미를 되새길 여유는 부족했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폴더를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 더 가치 있고 오래 남을 방식으로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러던 중, 사진을 인화해 앨범으로 만들고 글을 덧붙이는 나 자신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사진 앨범은 번거로운 관리..

삶을 기록처럼 2024.12.18